도서

연인 - 뒤라스

일상책방 2024. 6. 2. 23:34

오랜만에 프랑스 작가의 책을 읽었다. 예전에 영화로 봤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소설이 원작인지도 몰랐는데 이 작품을 각색해서 영화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달콤한 제목과 달리 공허한 삶들의 울림이 계속 이야기된다.

 

연인 책표지

 

1. 작가 소개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6)는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마르그리트 도나디외이며, 뒤라스는 그녀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농장에서 따온 필명이다. 아버지를 여읜 후 프랑스어 교사인 어머니를 따라 베트남 곳곳으로 이사를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내다 1933년 프랑스로 영구 귀국했다. 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 및 영화감독으로 그녀의 작품은 시적인 스타일과 강렬한 감정적 표현으로 유명한다. 생전에 마흔여 권이 넘는 작품을 남겼으며 「연인」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2. 한 줄 요약

 

열 다섯 백인 소녀의 처절한 사랑과 아픈 가족사를 다룬 이야기.

 

3. 줄거리

 

프랑스령 베트남에서 가난한 프랑스 소녀인 나는, 강을 건너는 배 안에서 고급 리무진을 탄 부유한 중국인 청년을 만난다. 둘은 비밀리에 사랑을 이어가지만 인종적 편견과 문화적 차이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의 금지된 사랑은 가족들에게도 알려지고 결국 나는 베트남을 떠나 프랑스로 귀국하게 되면서 그와 이별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몇 해가 흐른 후 그는 말한다. 자신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다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

 

4. 등장인물

 

프랑스 소녀 

 

15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우 성숙한 인물이다. 가난과 평범하지 않은 가족들 간의 갈등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조숙했고 독립적인 성향을 갖췄다. 그녀의 사랑은 금지된 것에 대한 갈망과 사회적 규범에 대한 반항을 드러낸다. 소녀는 가족, 사랑, 사회로부터 억압받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금지된 사랑으로 나타난다.

 

중국인 청년

 

백만장자 아버지를 둔 중국인 청년. 프랑스에서 공부하다 흥미를 잃고 베트남으로 돌아온다. 소녀에 대한 사랑은 진실되지만 인종적, 사회적, 문화적 편견을 극복할 용기가 부족한 인물이다. 아버지의 반대를 끝내 이겨내지 못하는 억압된 자아의 표상이며, 사회적 규범을 따르는 인물

 

소녀의 어머니

 

프랑스어 교사로 남편을 잃고 홀로 세 아이를 키우는 강인한 어머니인 반면 정신적으로 불안정하여 감정기복이 심하고 큰아들에 대한 집착과 맹신으로 가족 간의 갈등을 야기한다.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책임한 이중적인 인물

 

소녀의 큰오빠

 

가족 내에서 제일 문제아. 갈등의 주요 요인이며,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인물이다. 어머니의 편애를 받으며 이를 남용해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아편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

 

소녀의 작은오빠

 

가족 내에서 유일하게 소녀의 사랑을 받는 존재. 병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나지만 소녀에게는 늘 따뜻했던 인물

 

5. 마무리 

 

뒤라스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유명한 책이다.  기억의 단편들이 나열된 것 같은 흐름으로 전개되기에 끝까지 읽었을 때 비로소 퍼즐이 완성된 느낌이 든다.

 

점점 미쳐가고 있는 어머니와 폭력적인 큰오빠와 가족 중에 유일하게 의지했던 작은 오빠의 죽음. 어린 소녀는 이 모든 것들을 안고 세상에 홀로 던져진다. 그리고 마침내 피할 수 없는 그와의 운명적인 사랑이 소녀 앞에 비밀리에 펼쳐진다. 그와의 첫 만남에서 소녀는 이미 예감한다. 그 부유한 남자와 특별한 사이가 될 것임을.

 

그 시절엔 아무리 부유해도 중국인과 백인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충격이었다. 지금 같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텐데 인종적 편견이 얼마나 심했었는지, 식민지라는 이름으로 백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  사랑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는지 절실하게 느꼈다고나 할까. 

 

소녀의 나이가 열다섯 살인 건 금지된 사랑이 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식민지의 백인 소녀는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별히 아름답지 않아도 백인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자신을 나타내고 싶은 대로 나타낼 수 있는 기질 때문에 모두에게 매력적인 소녀가 될 수 있었다. 소녀는 남들의 시선 따윈 아랑곳 않고 언제나 당당하다.

 

부유한 중국인 청년은 백인 소녀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녀와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고통에 빠지고 그녀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망하고 비통해한다. 결국 그는 소녀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리무진을 탄 채 먼발치에서 프랑스로 떠나는 배를 오래도록 지켜보며 이별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세상에 맞설 용기가 부족했다.

 

소녀는 베트남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그와의 애정 행위를 지속하지만 아무런 미련 없이 담담하게 그와 헤어진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이해했다.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사랑에 빠진 것은 그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는 것을"  

 

소녀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깨닫는다. 죽을 때까지 결코 멈출 수 없는 사랑은 자신도 그와 마찬가지였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연인을 이해하려면 표면이 아닌 인물의 내면을 깊이 탐구해야 한다. 연인이라고 쓰고 슬픔이라고 읽는다. 소녀감성이 아니라 감동은 덜 했지만 그 시대를 인내하며 살아야 했던 작가의 아픔만큼은 확실히 와닿았다. 뒤라스의 개인적인 고통들이 피부에 파편처럼 파고드는 느낌이었고 담담하게 받아들인 현실도 얼마든지 진실된 사랑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해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