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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싱글 영끌해서 집 산 후기

일상책방 2024. 7. 23. 20:36

지방에 살던 조카가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업이 되어 올라오게 되었다. 언니는 딸아이 혼자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려서 처음에는 극구 반대했지만 조카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어서 일단은 허락했다.

 

문제는 집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인턴사원으로 근무한 게 다였던 조카였기에 목돈이 있을 리 만무하고, 결국은 월세로 원룸을 얻어서 서울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하철역 근처 신축 원룸을 얻어서 처음으로 하는 독립에 20대였던 조카는 굉장히 고무되어 있었다. 

 

원룸 주방
원룸 주방

 

신축에 첫 입주라 나름 깔끔한 원룸이었지만 딱 들어서는 순간 답답함이 절로 밀려왔다. 특히나 옆 건물과 바로 붙어 있어서 창문은 늘 블라인드로 가린 채 살아야 했다. 그래도 조카는 좋아했다. 월세라도 지옥고라 불리는 지하나 옥탑방 고시원이 아니라 어엿한 원룸에 살기에 만족도가 컸다.

 

하지만 복병이 찾아왔다. 바로 코로나였다.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면서 그동안 별 불편함 없이 지내던 공간이 어느 순간 빨리 벗어나고 픈 답답한 공간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출근을 할 때는 몰랐는데 재택근무가 길어지니 처음엔 한없이 좋았던 공간이 비좁게 느껴지고, 2층인데도 앞 건물에 막혀 해도 잘 들지 않아 낮에도 늘 어둡게 있어야 하는 게 갈수록 불편함이 더해졌다.

 

어느덧 서울살이 3년 차, 언제쯤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날 수 있긴 할까? 하는 고민에 처음에 가졌던 흥분은 사라지고 걱정만 남았지만 본인이 원해서 올라온 서울이기에 다시 집으로 내려갈 수도 없었다.

 

그사이 결혼한 친구들이 생기고 그들의 신혼집에 다녀오면 자신의 처지가 더 암담하게 느껴졌다. 뉴스에서는 연일 집값이 고공행진을 한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온 나라에 부동산 광풍이 불어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겨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집은 무슨, 월세 대신 전세라도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올라와 조카와 함께 열심히 전세를 구하러 다녔다. 생각보다 만만찮은 전셋값. 그렇다고 지금보다 시설이 더 좋은 것도 아니고. 전세 대출받아서 들어간다고 한들 2년 혹은 4년 지나면 또 옮겨가야 하기에 그럴 바에야 차라리 집을 사라고 넌지시 말했다. 물론 조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한 귀로 듣고 넘겼지만 그때부터 집을 사라는 언니와 나의 협공이 시작되었다.

 

조카 : 집은 사고 싶지만 돈이 없다.

나    :  대출을 받아라. 대출을 안 해줘서 문제지 대출을 해주는데 뭐가 문제냐!

 

조카 : 몇십 년씩 대출금 내면서 살기 싫다.

나    : 강제저축한다고 생각해라. 네가 돈 모아서 집 사는 거보다 집 사고 대출금 갚는 게 훨씬 낫다.

 

조카 : 대출금 내면 생활비가 부족하다.

나    : 지금 내는 월세로 대출금 상환하면 된다. 생애최초는 이율도 낮아서 월세나 원리금 상환이나 별차이 없다.

 

그렇게 언니와 나의 끈질긴 협공 끝에 조카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 그때부터는 집을 알아보는 게 급선무였다. 절대 서울을 벗어날 수 없다는 조카의 고집에 서울 시내를 다 뒤집고 다녔다.

 

서울은 역시 서울

 

소형아파트도 이미 너무 올라서 서울 변두리 구축 아파트도 사회초년생인 조카가 사기에는 언감생심이었고, 예산 범위 내에서는 지금 사는 원룸과 별반 다름없는 오피스텔정도나 가능했다. 집을 사겠다는 조카의 마음은 현실의 벽 앞에 무너졌다.  

 

포기는 아직 일러

 

결국 경기도로 눈을 돌렸다. 직장이 광화문이었기에 출퇴근이 한 시간 내로 가능한 곳을 찾다가 최종적으로 선정된 곳이 고양시 행신동이었다. 행신동을 선정한 이유는 일산보다 서울에서 가깝고,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가 수시로 오가고,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져 있어 살기에 편하고, 무엇보다 홍대나 합정을  자주 나가는 조카에게는 거리상 행신동이 딱이었다.

 

월세에서 자가로

 

구축 소형아파트이지만 인테리어를 싹 해서 화이트톤으로 꾸미고, 가구와 가전제품도 전부 새로 장만하고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완성한 조카는 처음엔 마지못해 집을 샀다고 투덜 됐는데 등기를 치고 나니 어깨가 쑥 올라가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무엇보다 앞에 막히는 게 없어서 하루 종일 햇살이 가득하니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삶의 질 향상이다.

 

예전에는 뭔가 모르게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는데, 집이 생겨서인지 이제는 잔잔한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실거주라 집값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마음 편하게 살아서인지 한결 여유가 생긴게 느껴졌다.

 

물론 처음에는 출퇴근하는 게 멀게 느껴지고 힘들다고 했지만 한 달이 지나자 출퇴근도 적응되고, 주변 사람들도 축하해 주니 집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내 집에서 사니 전셋값 오를까 걱정할 필요 없고, 월세 살아도 2년 지나서 보증금 혹은 월세 올려달라고 할까 봐 마음 졸일 필요 없고 이래저래 조카에게 집은 마음의 안식처이자 자신만의 힐링공간 강남아파트 부럽지 않은 소중한 보금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