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박완서 작가의 시를 읽는다.

일상책방 2024. 7. 30. 00:24

누가 이런 기발한 생각을 했을까?

와! 하고 감탄이 절로 난다.

 

이렇게 짧은 문장으로 이렇게 큰 울림을 주다니.

 

역시 박완서 선생님은 남다르다. 어떤 글을 읽어도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나의 롤모델이기도 한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이렇게 또 접할 수 있어서 묵직하니 너무 좋다.

 

시를 읽는다 책 표지

 

 

1. 작가 소개

 

박완서(1931~2011)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났다.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중퇴했다.  

1970년 마흔이 되던 해에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작품으로 장편소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 단편집으로 「엄마의 말뚝」 「너무나 쓸쓸한 당신」 등이 있으며 대한민국 문학상을 비롯해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2. 시를 읽는다

 

시를 읽는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3. 감상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이렇게 명확할 수가 있을까? 박완서 선생님의 한 문장 한 문장이 구구절절 가슴에 와닿는다.

 

시를 언제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학교 때 시의 본질보다는 문제 풀이용으로 전환된 이후 시는 내 생활에서 얼마나 멀어졌던가. 

 

최근에 정서적으로 메말라 가는 것 같아서 시를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였다.

나태주 시인의 시부터 시작해 볼까 생각하던 찰나,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책을 읽기 전에 박완서 선생님도 시를 읽는데, 나는 여태 뭐 하느라 시 한 편 안 읽었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처음에는 박완서 선생님이 좋아하는 시를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놓은 작품인 줄 알고 집었다가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럴 수가!

이건 정말 반칙 아닌

 

 

시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위로받을 수 있는 박완서 선생님의 마음의 향기가 느껴진다.

 

박완서 선생님을 존경하고 대부분의 작품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소설은 소설대로, 산문집은 산문집대로 매력이 철철 넘치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 「자전거 도둑」 「부숭이는 힘이 세다」도 아이들의 눈을 통해서 본 올바른 어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이 부분을 몇 번이나 곱씹어서 읽었는지 모른다. 지금의 내가 혹시나 그런 건 아닌지 반성도 하면서 말이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데 정신이 얼마나 공허하면 돼지처럼 무디어졌다고 표현했을까? 

어쩌면 이런 표현을 써 내려갈 수 있는지 그저 감탄할 뿐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저 등 따습고 배부른 것에 만족해서 산다면 한낱 동물들과 뭐가 다르리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선생님의 쓸쓸함과 고독과 연민이

그 모습은 언젠가, 어쩌면 조만간 내가 맞게 될 순간들이기에 가슴을 후벼 판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를 읽고 마음을 가꾸고, 삶의 향기를 피워내는 박완서 작가가 새삼 존경스럽고 부럽다.

 

지금도 존경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일 순위로 말하는 작가가 내게는 박완서 선생님이다.

70년대에 나이 마흔은 오늘날 쉰쯤 되었으려나 어쩌면 그보다 더 늦은 감도 있으리라.

그 나이에 등단한 자체만으로도 내 삶에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삼십 대에도 사십 대에도 박완서 작가가 나이 마흔에 등단했다는 게 큰 위로가 되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며 위안을 삼은적도 많았다.

선생님의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딱 이 정도만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내내 감탄하고 읽었다. 

 

주변에서 겪을 수 있는 어쩌면 평범하고 어쩌면 고귀한 일상들을 실타래를 풀듯 술술 풀어내는 작가의 필력에 마법처럼 빠져든다.  읽고 나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박완서 작가가 살았던 그 모진 세월들이 내게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 시대를 살았던 누구라도 피해 갈 수 없었던 그런 일들이 엄마나, 어머니가 겪었을 그 일들을 그네들의 모진 삶을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덕분에 한 많은 세월을 꿋꿋이 견디고 지금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엄마와 어머니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도서관에 가서 딱히 읽고 싶은 책이 없을 때 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집어든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보니 기억이 새롭고 삶의 연륜이 묻어나서인지 그때는 몰랐던 삶의 향기가 새록새록 느껴지기도 한다.

 

삶이 흔들릴 때 방향을 잡지 못하고 뭔가 계속 맴도는 느낌일 때 선생님의 책들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성을 잡고 한발 내디딘 적도 많다.

 

이 작품은 산문집「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현대문학, 2010) 중 일부 발췌한 내용이다.

 

이 책을 계기로 이번 주말에는 박완서 작가와 조우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누구가 가슴속에 좋아하는 작가 한 명쯤은 있을터 내겐 예전이나 지금이나 박완서 선생님이 영원한 롤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