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편한 배려 - 마녀의 빵

일상책방 2024. 5. 1.

배려가 언제나 좋기만 할까? 대부분은 그렇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배려가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상대는 배려인데 나는 참견으로 느껴질 때도 있고, 반대로 나의 배려가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배려인지 참견인지는 상대의 표정과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불편한 배려 - 마녀의 빵
불편한 배려 - 마녀의 빵

 

오 헨리 단편「마녀의 빵」에도 잘 나와 있다. 주인공 미첨은 빵가게 주인이다. 인정도 풍부하다. 그녀의 가게에는 매일  굳은 빵을 사가는 블럼버거가  방문한다. 어느 날부터 미첨은 블럼버거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가 가난한 화가일 거라고 짐작해서 그의 빵에 몰래 버터를 넣어준다.

 

미첨은 빵을 먹는 동안 자신이 한 배려를 통해 블럼버거가 잠시나마 자신을 떠올릴 것을 예상하며 행복해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블럼버거는 가난한 화가가 아니었고 건축 제도사였다. 미첨의 잘못된 배려로 그가 일 년 동안 준비해 온 공모전이 엉망이 되고 그는 그녀에게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을 퍼붓는다.

 

미첨은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블럼버거가 매일 굳은 빵을 사간 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우개로 쓰기 위해서였다. 미첨은 그것도 모르고 자신의 입장에서 배려를 한 것이다. 결과는 대참사였지만 말이다.

 

미첨은 자신의 입장에서 블럼버거를 배려한 건 맞다. 그녀의 인정미 많고 따뜻한 성격은 예술가의 자존심까지도 헤아렸기에 블럼버거에게 묻지 않고 몰래 버터를 넣어준 것이다. 다만 블럼버거에게 물어봤다면 진정한 배려가 되었을 텐데 짐작만 하고 묻지 않아서 오히려 상대방과의 좋았던 관계도 단절되고 만다.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경우는 흔하게 나타난다. 함께 밥을 먹을 때 나는 이미 배가 부른데 자꾸 더 먹으라고 한다거나, 내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맛있다면서 자꾸 먹어보라고 권하는 경우 처음에는 괜찮다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상대를 위해 배려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기준이 언제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건 배려가 아니다. 

 

진정한 배려가 되려면 나도 상대도 서로 편해야 한다. 상대에게 배려한다고 무조건 베풀다가 오히려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다. 나는 배려인데 상대는 어느 순간 마치 권리인 것처럼 행세하면 이건 뭐지?라는 생각에 배려도, 관계도 결국은 단절되고 만다.

 

나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회사에서 만났지만 나이가 동갑이라는 이유로 자주 어울린 동료가 있었다. 가끔 점심을 함께 먹었는데 어느 날 자신의 가정 형편을 서슴없이 얘기해서 조금 놀란적이 있었다. 이혼을 해서 아이를 혼자 키우는데 남편이 양육비를 제대로 안 줘서 일을 하게 되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나라면 굳이 안 했을 이야기인데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할 만큼 친한가 이런 생각도 잠시 했었다.

 

당당하게 자신의 가정사를 얘기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그 얘길 듣고 처음에 한두 번 밥값이며, 커피값을 내가 계산했더니 어느 순간부터 만날 때마다 내가 사는 게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었다. 내가 원해서 사는 건 문제없었는데 으레 내가 내겠거니 하고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당당한 태도에 슬슬 화가 나가 시작했다. 선의가 계속되면 마치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

 

그 후 만남은 줄어들고  어쩌다 한번 만나도 만남의 피로도가 쌓여 멀리하던 찰나 나보다 먼저 그녀가 퇴사를 했다. 연락이 와도 짧게 통화만 하고 더 이상의 만남은 갖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나의 잘못된 배려로 사이가 멀어진 것일 수도 있지만 관계에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배려는 결국은 독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배려와 참견은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이다. 배려는 상대도 나도 서로 기쁘게 만들지만, 참견은 서로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는 불필요한 행동이다. 진정한 배려를 하고 싶다면 내가 아닌 상대가 원할 때,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해 주는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