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집이 없으면 생기는 일
집은 꼭 있어야 할까? 저출산으로 인해 앞으로는 집이 남아돌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 집 한 채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노년에 집이 없으면 부모로 인해 그 자식들까지도 삶이 조금 버거워진다.
사례 1 - 부모 입장
올해 일흔 인 김여사는 불과 3년 전까지 아들 내외와 함께 살았다. 아들 내외가 맞벌이인 관계로 손주 녀석들을 둘이나 김여사가 돌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가진 거 없이 시작한 아들 내외는 집을 장만했고,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함께 살았다.
문제는 아이들이 크면서부터였다. 중고등 학생이 된 아이들은 더 이상 할머니의 손길이 필요치 않았다. 거기에다 사소한 고부 갈등은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들 내외가 분가를 하겠다며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을 끊는다고 울고불고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국 아들 내외는 근처에 월세를 얻어서 분가를 하고, 김여사 부부는 덩그러니 큰 집에 남겨졌다. 아들 내외와 손주들과 북적거리며 살 때는 몰랐는데 두 부부만 사니 38평 아파트가 적막하기 그지없다.
김여사 부부는 아들 내외가 분가한 후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었다. 아들 집에 무상거주하지만 일체의 소득이 없기에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과 노령 연금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간다. 그나마 아들 통장에서 관리비가 자동이체 되니 집에 대한 부담은 없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에 아들 녀석이 김여사에게 임대아파트를 얻어서 나갔으면 하는 뜻을 비추었다. 지금 월세로 사는 집에 애들과 살기엔 너무 비좁고, 벌어서 월세로 다 나가는 것도 아깝다는 취지였다.
아들네 형편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기껏 키워놨더니 부모 보고 나가란다. 쫓겨나는 심정이
다. 괘씸하다.
사례 1-1 자식입장
신혼 때부터 어머니랑 함께 살았으니 거의 이십 년이다. 그만큼 살았는데 무슨 분가를 하냐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살기 위해서 분가했다.
고부갈등이야 그러려니 하더라,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할머니와 부딪치는 일이 잦아지자 결국 모두를 위해 분가를 하는 게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부모님을 분가시키라고 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어서 우리 네 식구가 18평 아파트 월세를 얻어 나왔다. 큰 짐은 전부 두고 나와서 살림살이도 간소하니 마치 자취생 같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키워주신 덕분에 그나마 집이라도 한 채 장만할 수 있었던 건 인정한다.
하지만 살면서 어머니는 늘 내가 이 집 가정부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는데 그럴 때마다 듣기 거북했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양육하는 동안 우리 부부는 뼈 빠지게 일해서 결혼 칠 년 만에 집을 장만했다. 물론 절반은 대출이었지만 말이다.
생활이 넉넉한 건 아니었지만, 집을 장만하니 뭔가 심리적으로 여유로워졌다. 대출금 갚으랴, 아이들 키우랴 허리가 휘긴 했지만, 어머니는 너무나 당당하게 기본 생활비는 물론, 장 보는 비용, 병원비, 집안의 온갖 경조사비까지 모두 우리에게 요구했다. 자식이 어머니한테는 현금인출기인가 싶었다.
월세를 3년동안 살고 나서 다시 우리가 살던 집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매달 내는 월세가 부담되기도 했지만, 어머니께 맡긴 집이 날이 갈수록 엉망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도 살림을 험하게 하셨는데 정도가 더 심해졌다.
이제 와서 다시 합가를 하는 건 서로가 원하지 않았기에, 임대아파트라도 얻어 드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임대보증금과 매월 나가는 임대료는 다 우리 몫이지만 말이다.
노년에 집이 없는 것만큼 비참한 건 없다. 어머니는 임대아파트에 들어가는 게 동네 사람들 보기 낯 부끄럽다고 체면치레를 하시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게 싫었으면 어떻게든 젊었을 때 아끼고 모아서 내 집 마련을 했어야 했다.
집이라도 한 채 있었으면 내 집에서 편하게 주택연금을 받으면서 사실텐데 말이다.
부모가 집이 없으니 결국 부모의 집 문제도 자식의 몫으로 남는다.
사례 2
올해 팔순인 오여사는 일흔이 될 때까지 일을 했다. 십 년 전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자, 건물 청소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아들 셋이 있어도 해준 것도 없는데, 차마 빚까지 물려줄 수는 없어 어떻게든 일을 해서 빚을 다 갚아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하지만 일흔이 넘어가자 더 이상 일하기가 힘들어졌다. 오여사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겼지만 건물 청소부도 이제는 더 젊은 사람들로 대체되었기에 오여사는 아직 한창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연스럽게 밀려났다.
자식들한테 손 벌리는 게 죽기보다 싫었지만 당장 먹고살아야 하기에 처음으로 생활비 이야기를 꺼냈다. 자존심이 산산 조각나는 것 같은 비참함을 맛봤다.
다행히 자식들이 이십만 원씩이라도 보태주겠다고 하는데 어쩐지 다들 안색이 안 좋다. 다른 집 자식들은 부모 용돈도 잘 주고 옷도 사주고 맛난 것도 많이 사 준다는데 아무래도 자식을 잘못 키웠나 보다.
없는 살림에 억지로 공부시켜 놨더니 부모는 뒷전이고 지들 새끼만 챙긴다. 자식새끼 챙기는 거 반이라도 부모 생각한다면 어디 가서 효자 소리 들을텐테...... 집이라도 한 채 있었으면 자식들이 더 살가웠으려나.
지금 사는 집은 반지하 빌라인데 보증금이 오천이다. 장마철이면 늘 비가 샜지만 그나마 이 근방에서 이렇게 싼 집은 이 집 밖에 없다. 지상으로 가고 싶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녔는데 이 돈으로는 택도 없었다. 집주인들도 노인네 혼자 산다고 하니 어쩐지 꺼리는 눈치였다.
비 오면 비가 샐까, 전세 만기 다가오면 행여나 주인이 보증금 단돈 얼마라도 올려달라고 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빈말이라도 같이 살자는 자식 한 명 없다.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더니 이럴 때 하는 말이다.
사례 2-2 자식 입장
어머니가 이사를 가고 싶다는 뜻을 얼핏 비추었다. 사실 며느리인 내 입장에서도 그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어머니 이사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다들 돈 앞에서는 묵묵부답이다.
우리는 둘째다. 지금 어머니가 사시는 집 전세 보증금 절반도 우리가 해드린 것이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아들 세명중에서 남편만 대학을 나왔기 때문이다.
남편이 대기업에 다니기는 하지만 외벌이인 까닭에 남들한테 아쉬운 소리는 안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형편이 넉넉한 건 아니다. 그런데도 시댁에선 돈 쓸 일이 있으면 언제나 우리에게 넌지시 압박을 준다. 서울에 집이 있다는 이유로, 형제들 중에 유일하게 자가라는 이유로 우리가 부자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공무원 박봉에 애가 셋이라 형편이 어렵다 하고, 셋째는 몇 번의 사업을 실패하고 거의 백수인 관계로 시댁에 들어가는 큰돈은 알게 모르게 둘째인 우리가 담당했다.
생활비도 매월 꼬박꼬박 남편 월급날에 맞춰서 자동이체 시켜 놓았는데, 다른 자식들은 왠지 안 주는 눈치이다.
어머니 사시는 집이 반지하여서 여러모로 불편한 건 알지만 우리가 나서서 해결할 수는 없다.
나이가 들어서 집이 없으니 여러모로 자식들이 피곤해진다. 이다음에 나는 우리 자식들에게 이런 모습을 안 보이고 싶다.
어머니를 보면서 나이가 들수록 내 집은 꼭 필요하다는 걸 매번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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